잃어버린 낮을 찾아서
부모님은 20대부터 60년 넘게 서울에서 낮을 잃어버린 채 사셨다. 동대문 시장에서 일하셨는데 밤에 일하시고 낮에 주무시는 일을 매일 반복하셨기 때문이다. 80이 넘어 은퇴하셨을 때 부모님의 잃어버린 낮을 찾아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고 열심히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장거리 또는 장시간 여행을 힘들어하시기에 접근성이 좋은 서울을 자주 여행했다. 서울 그중에서도 고궁을 자주 여행했다. 고궁은 접근성이 좋고 부모님이 기억하시는 옛 모습이 남아 있고 대부분 평지로 무장애길이어서 부모님도 어려움 없이 걸으실 수 있다 등이 그 이유였다.
경복궁 휴무일에 아무도 없는 설경
눈이 펑펑 쏟아지던 12월에 어느 멋진 날이었다. 설경을 보여드리기 위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경복궁에 갔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매표소까지 걸어가는데 보이는 곳은 모두 눈으로 덮여있었다. 그 아름다운 설경에 부모님은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 참 예쁘구나" "정말 예쁘구나" "너무 예쁘구나" 그날 설경을 보시며 감탄하시던 부모님의 목소리와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아뿔싸. "매주 화요일은 경복궁 휴무일입니다."라는 팻말이 서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휴무일이었다. 어쩐지 광화문에서 경복궁 입구인 흥례문까지 새하얗게 눈이 쌓인 벌판 위에 사람 발자국 하나 없더라. 그 덕분에 아무도 없는 설국에서 첫발자국 남기며 설원 위를 걸을 수 있었다. 휴무일이라 더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화요일에 또다시 눈이 오면 아무도 없는 설경을 즐기기 위해 경복궁에 와야겠다. 다행히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휴무일이 아니어서 발길을 돌려 창덕궁으로 갔다.
창덕궁 후원에서 왕과 왕비 되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오늘 하루 왕과 왕비가 되셔서 궁궐의 설경을 둘러보시죠."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고맙다."라며 참 좋아하신다. 고궁에 들어서면 그 순간 서울에 사는 평범한 노인이 궁궐에 사는 왕과 왕비가 될 수 있다. 마법 같은 일인데 어렵지 않다. 노부모님을 모시고 고궁에 가서 왕과 왕비처럼 모시면 된다. 눈이 녹았지만, 다행히 창경궁도 아직 설국이었다. 창덕궁 후원의 설경을 보기 위하여 전각은 둘러보지 않고 바로 후원 매표소로 갔다. 아름다운 고궁의 설경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평소 말이 없으신 아버지께서 말문을 여신다. 그동안 못 뵌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일상의 얘기들을 들려주신다. 부모님의 이야기에 하하 호호하며 걷다 보니 후원 매표소에 도착했다. 보통 후원은 눈 예보가 있으면 사전 예매로 표가 매진되는데 오늘은 운 좋게도 10분 뒤에 입장하는 표가 남아있었다. 눈 예보가 없었는데 예보와 다르게 눈이 내린 덕분이었다. 부용지 - 불로문 - 애련지 - 관람지 - 연경당 - 옥류천 순으로 걸으며 아름다운 후원의 설경을 부모님과 함께 만끽하였다. 불로문 앞에서는 인생 사진 찍어보자는 핑계를 들어 부모님이 불로문을 몇 번씩 오고 가시게 하며 부모님의 불로장생을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연경당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건축했기 때문에 "나 때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부모님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인이 되니 쓸모없어졌다며 가끔 서글퍼 하셨는데 이때만큼은 아시는 바를 장성한 아들에게 들려주시며 활력을 찾으신다. 창덕궁에 자주 오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후원 관람을 마치고 덕수궁으로 갔다.
덕수궁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미 제법 걸으신 부모님의 체력을 고려하여 덕수궁은 걷는 대신 서소문청사 13층에 있는 정동 전망대에 앉아서 덕수궁 전경을 감상했다. 안타깝게도 그 새 눈이 다 녹아서 기대했던 설경은 볼 수 없었지만 13층 정동 전망대 카페에 앉아서 창밖으로 덕수궁 전경을 내려다보며 따뜻한 차 한잔 마시는 편안함에 부모님은 꽤 만족해하셨다.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여행은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다행히 고궁 주변에는 오래된 옛 맛 맛집이 많다. 예전부터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특히 황가네 칼국수(예전 북촌 칼국수)를 무척 좋아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제 서울에 펑펑 눈 오는 날이면 부모님은 경복궁, 창덕궁 후원, 덕수궁 그리고 황생가 칼국수에서 있었던 그날의 눈부신 추억을 이야기하시곤 한다.
노부모님께 고궁 여행에 좋은 이유
- 접근성이 좋다.
- 평지로 되어 있다.
- 넓고 예쁜 정원이 있다.
- 화장실이 곳곳에 있다.
- 주변에 옛 맛 맛집이 있다.
잃어버린 낮을 찾아서
부모님은 20대부터 60년 넘게 서울에서 낮을 잃어버린 채 사셨다. 동대문 시장에서 일하셨는데 밤에 일하시고 낮에 주무시는 일을 매일 반복하셨기 때문이다. 80이 넘어 은퇴하셨을 때 부모님의 잃어버린 낮을 찾아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부모님을 모시고 열심히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장거리 또는 장시간 여행을 힘들어하시기에 접근성이 좋은 서울을 자주 여행했다. 서울 그중에서도 고궁을 자주 여행했다. 고궁은 접근성이 좋고 부모님이 기억하시는 옛 모습이 남아 있고 대부분 평지로 무장애길이어서 부모님도 어려움 없이 걸으실 수 있다 등이 그 이유였다.
경복궁 휴무일에 아무도 없는 설경
눈이 펑펑 쏟아지던 12월에 어느 멋진 날이었다. 설경을 보여드리기 위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경복궁에 갔었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매표소까지 걸어가는데 보이는 곳은 모두 눈으로 덮여있었다. 그 아름다운 설경에 부모님은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 참 예쁘구나" "정말 예쁘구나" "너무 예쁘구나" 그날 설경을 보시며 감탄하시던 부모님의 목소리와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아뿔싸. "매주 화요일은 경복궁 휴무일입니다."라는 팻말이 서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휴무일이었다. 어쩐지 광화문에서 경복궁 입구인 흥례문까지 새하얗게 눈이 쌓인 벌판 위에 사람 발자국 하나 없더라. 그 덕분에 아무도 없는 설국에서 첫발자국 남기며 설원 위를 걸을 수 있었다. 휴무일이라 더 좋았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화요일에 또다시 눈이 오면 아무도 없는 설경을 즐기기 위해 경복궁에 와야겠다. 다행히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휴무일이 아니어서 발길을 돌려 창덕궁으로 갔다.
창덕궁 후원에서 왕과 왕비 되어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오늘 하루 왕과 왕비가 되셔서 궁궐의 설경을 둘러보시죠."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래, 고맙다."라며 참 좋아하신다. 고궁에 들어서면 그 순간 서울에 사는 평범한 노인이 궁궐에 사는 왕과 왕비가 될 수 있다. 마법 같은 일인데 어렵지 않다. 노부모님을 모시고 고궁에 가서 왕과 왕비처럼 모시면 된다. 눈이 녹았지만, 다행히 창경궁도 아직 설국이었다. 창덕궁 후원의 설경을 보기 위하여 전각은 둘러보지 않고 바로 후원 매표소로 갔다. 아름다운 고궁의 설경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평소 말이 없으신 아버지께서 말문을 여신다. 그동안 못 뵌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일상의 얘기들을 들려주신다. 부모님의 이야기에 하하 호호하며 걷다 보니 후원 매표소에 도착했다. 보통 후원은 눈 예보가 있으면 사전 예매로 표가 매진되는데 오늘은 운 좋게도 10분 뒤에 입장하는 표가 남아있었다. 눈 예보가 없었는데 예보와 다르게 눈이 내린 덕분이었다. 부용지 - 불로문 - 애련지 - 관람지 - 연경당 - 옥류천 순으로 걸으며 아름다운 후원의 설경을 부모님과 함께 만끽하였다. 불로문 앞에서는 인생 사진 찍어보자는 핑계를 들어 부모님이 불로문을 몇 번씩 오고 가시게 하며 부모님의 불로장생을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연경당은 다른 건물들과 달리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건축했기 때문에 "나 때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부모님의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인이 되니 쓸모없어졌다며 가끔 서글퍼 하셨는데 이때만큼은 아시는 바를 장성한 아들에게 들려주시며 활력을 찾으신다. 창덕궁에 자주 오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후원 관람을 마치고 덕수궁으로 갔다.
덕수궁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미 제법 걸으신 부모님의 체력을 고려하여 덕수궁은 걷는 대신 서소문청사 13층에 있는 정동 전망대에 앉아서 덕수궁 전경을 감상했다. 안타깝게도 그 새 눈이 다 녹아서 기대했던 설경은 볼 수 없었지만 13층 정동 전망대 카페에 앉아서 창밖으로 덕수궁 전경을 내려다보며 따뜻한 차 한잔 마시는 편안함에 부모님은 꽤 만족해하셨다.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여행은 더욱 즐거워지는 법이다. 다행히 고궁 주변에는 오래된 옛 맛 맛집이 많다. 예전부터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특히 황가네 칼국수(예전 북촌 칼국수)를 무척 좋아하신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이제 서울에 펑펑 눈 오는 날이면 부모님은 경복궁, 창덕궁 후원, 덕수궁 그리고 황생가 칼국수에서 있었던 그날의 눈부신 추억을 이야기하시곤 한다.
노부모님께 고궁 여행에 좋은 이유
- 접근성이 좋다.
- 평지로 되어 있다.
- 넓고 예쁜 정원이 있다.
- 화장실이 곳곳에 있다.
- 주변에 옛 맛 맛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