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6
레트로 지대 돈의문박물관마을 상설전시
돈의문박물관마을
길을 걸었을 뿐인데 보이지 않는 차원의 문을 통해 20세기로 떨어진 기분. 불과 5초 전까지 21세기에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구경하고, 한옥예술체험을 하던 일반 관람객 1은 옛안길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20세기로 간 시간여행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대문으로 익숙한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 돈의문.
1915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돼 현재는 서울 사대문 중 유일하게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문이에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서울의 삶을 간직한 채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으로 마을 전체가 박물관으로 재탄생 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상설전시'라고 되어 있지만 거대한 테마파크를 보고 온 것 같았는데요.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레트로를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백 투 더 6080!
| 서대문 사진관&삼거리 이용원
서대문 사진관
사진관 내부 ⓒ돈의문박물관마을
BTS 자체 콘텐츠 '달려라 방탄'에도 나온 그곳.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사진관보다는 누군가의 집무실 같았던 곳, 서대문 사진관입니다. 인테리어가 왜 이렇게 고풍스럽나 했더니 근대 사교장과 1980년대 결혼식장을 콘셉트로 조성되었다고 하네요.
서대문 사진관은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이기도 해서 내부를 자세히 촬영할 수는 없었는데요. 서대문 사진관에서 기록을 남긴 분들의 사진이 벽면 여기저기에 걸려 있습니다. 1980년대로 건너온 만큼 헤어, 의상을 맞추고 온 분들부터 가족, 연인,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이 새겨지며 이곳은 또 다른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의관박물관마을 역사 한 귀퉁이에 나를 채워 넣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바로 옆에 자리한 삼거리 이용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삼거리 이용원
KBS1TV, 2TV 주말연속극에서 본 것 같은 배경.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풍경들. 푸근한 인상의 이발사가 동네 주민을 반갑게 맞이하고, 미용 가위로 쓱싹쓱싹 숙련된 이발 솜씨를 발휘하고 있으면 가겟방에선 놀러 온 동네 아버지들이 바둑을 두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저절로 재생됩니다. 가겟방에 있는 바둑판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슈퍼마켓, 이용원 등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구나 싶었습니다.
1960~70년대 이발소를 재현한 삼거리 이용원은 디테일을 들여다봐야 하는 공간입니다. 이용 의자, 가운, 이발에 필요한 도구들을 비롯해 영업신고증도 벽면에 달려 있어요. 이용원뿐 아니라 돈의문박물관마을 상설전시관 모두 6080 시대의 감성을 최대한 전하기 위해 엄청 정교하게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시간이지만 마치 그 시대에 한 번은 다녀온 사람처럼 보게 돼요. 참고로 이용원은 유퀴즈온더블록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하네요.
|새문안극장
새문안극장
멀티플렉스가 활성 되기 전 영화관을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개봉영화를 알리는 그림입니다. 건물 상부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그림은 늘 닮게 그렸냐, 아니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곤 했었죠. 닮든 닮지 않았든 임팩트가 매우 컸다는 것만은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요?
새문안극장은 60~80년대 영화관을 재해석한 공간입니다. 1층은 예전 영화의 실제 필름을 전시하고 있고 2층에서는 옛날 영화, 만화가 상영되고 있어요. 영화 상영 시간표는 돈의문박물관마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문안극장
연소자 입장가, 서양 전통의 맛!, 암표는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맙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표현들, 예전에도 어김없이 말썽이었던 암표 거래. 주옥같은 카피와 경고 문구를 현재와 비교하며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박물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지친 다리를 위해 극장 의자에 앉아 상영되는 영화를 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 작품들을 보고 컸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그 시절 엄마, 아빠의 모습이 궁금해지고, 괜히 극장 내부를 한 번 더 둘러보게 되고. 이런 순간이 있기에 가본 적 없는 곳, 겪지 못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나 봅니다.
|돈의문 콤퓨타 게임장&새문안 만화방
돈의문 콤퓨타 게임장
이놈의 자식, 아직도 게임하고 있으면 어떡해! 6시까지 들어오라고 그랬지!
등에 꽂히는 맵고 거센 엄마의 손 회초리가 연상되는 돈의문 콤퓨타 게임장과 새문안 만화방은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 유행했던 게임과 만화를 구경하고 직접 플레이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장 한쪽 벽면에 오락실로 자녀를 찾으러 온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1층은 게임방, 2층은 만화방이에요. 천국이 따로 없죠. 콘솔 게임으로도 즐겼던 스노우맨이나 버블버블을 오랜만에 만났어요. 역시나 인기가 좋아 게임기 앞이 빌 틈이 없었습니다.
아날로그 게임의 맛은 역시나 버튼을 연사하느라 나는 타닥타닥 플라스틱 소리 같아요. 실제로 콤퓨타 게임장 안은 게임에 집중한 사람들의 버튼 연사 소리가 가득했어요. 스트리트 파이터, 테트리스 등 대부분의 게임들을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공간이 주는 맛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
새문안 만화방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만화방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많은 종류의 만화책이 꽂혀져 있어요. 드래곤볼, 공포의 외인구단, 보물섬, 다정다감 등등 만화책들은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찢겨 있는 등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었어요.
만화방을 둘러보다가 알게 된 점은 이 시대에도 커피나 차를 만화방에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만화방의 간소화 버전 혹은 초기 모델이겠죠? 벽면이나 선반 위에 있는 종이딱지는 잠재된 수집 욕구를 깨워요. 딱지나 따조, 캐릭터 카드를 모으기 위해 문방구 앞을 어슬렁거렸던 기억까지 자동 소환되며 자연스럽게 저의 유년 시절도 떠올리게 되는 마법 같은 공간입니다.
|생활사 전시관&서대문 여관
생활사 전시관
60~80년대 집을 재현한 생활사 전시관에 들어가면 부뚜막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깁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는 속담이 있죠. 그 부뚜막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어요. 부뚜막 옆으로는 연탄이 쌓여있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쥐 모형도 있어요. 출입구 오른 편에는 생활하는 방이 있는데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봤던 익숙한 자개장이나 괘종시계도 반가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노란 장판이었습니다. 요즘엔 노란 장판이 밈처럼 사용되어 낯선 단어는 아니지만 노란 장판이 정말 이렇게 진한 노란빛을 띠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생활사 전시관에는 르세라핌이 콘텐츠 촬영을 위해 방문했었다고 해요.
서대문 여관 / 기획전 《기억 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
서대문 여관에서는 《기억 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12명의 시민이 공유한 기억의 일부를 볼 수 있어요. 일반 시민분들의 사진이 많아 내부를 찍기보다는 나 혹은 당신이 겪었을 수도 있었을 일상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전시는 여관 1층~2층으로 이어져 있고, 각 방마다 시민 작가들의 사진, 영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옛날 필름의 질감, 분위기, 빛 바램이 그대로 느껴지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한강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16:9가 아닌 거의 정방형 크기, 유튜브가 아닌 VHS가 어울리는 영상 역시 옛 화질 그대로라 이렇게 보존을 잘 해 두셨다니! 감탄하게 됩니다. '90년도로 돌아가면 젊은 소녀 엄마랑 놀러 다녀야지'라는 소감처럼 정말 시간여행자가 된다면 소녀, 소년이었을 혹은 청년이었을 부모님과 놀러 다니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돈의문 구락부
돈의문 구락부 1층
돈의문 구락부 2층
낯선 단어 '구락부'. 클럽의 일본식 음역(音譯)입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개화파 인사 등이 파티나 사교 모임, 스포츠 등을 하기 위해 만났던 공간입니다. 앞서 봤던 공간들이 소시민과 맞닿아 있고 조금 더 친근했다면 구락부는 예스러움 속에 화려함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구락부 1층은 크게 클럽, 신여성의 방, W.W 테일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클럽은 화려한 스테이지와 의상, 전축으로 멋을 냈고 신여성의 방은 지금 입고 신어도 세련될 의상과 티타임 공간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해요.
W.W 테일러는 처음에 테일러 숍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쉐보레, 포드 등 자동차를 판매해 최초로 한국 자동차 보급에 기여한 인물 윌리엄 W. 테일러가 세운 'W.W 테일러 상회'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선 테일러 상회에서 낸 자동차 지면 광고들, 당시 건물 모습과 브릭으로 만든 W.W 테일러 상회의 쉐보레 자동차(민경인, 김동혁 작가 제작)를 볼 수 있어요.
2층은 홀 바로 꾸며져 있는데요. 그 시대 펍을 재현한 것처럼 보였어요. 심플하게 꾸며져 있어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어린아이들에게는 근대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 어른들에게는 추억이 방울 방울지는 곳이어서 가족 단위로 방문하면 특히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돈의문 역사관, 삼대 가옥, 스코필드기념관 등 구경할 곳이 많고 상설전시, 서대문 여관에서 진행 중인 《기억 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을 비롯해 미디어 파사드 《환영 대 환영 Host and Ghost》, 연중 상설 미디어 아트쇼 《시화일률》도 진행 중이니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시간 여행 혹은 추억을 되짚어 보는 결정적 순간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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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박물관마을 상설전시》
· 관람안내: 화~일요일 10:00~19: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기억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
· 관람안내: 2023.05.27.(토)~12.31.(일) 10:00~19: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세기몰 S매거진
기사 원문
2023.06.16
레트로 지대 돈의문박물관마을 상설전시
돈의문박물관마을
길을 걸었을 뿐인데 보이지 않는 차원의 문을 통해 20세기로 떨어진 기분. 불과 5초 전까지 21세기에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구경하고, 한옥예술체험을 하던 일반 관람객 1은 옛안길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20세기로 간 시간여행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서대문으로 익숙한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 돈의문.
1915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돼 현재는 서울 사대문 중 유일하게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문이에요.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서울의 삶을 간직한 채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으로 마을 전체가 박물관으로 재탄생 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상설전시'라고 되어 있지만 거대한 테마파크를 보고 온 것 같았는데요. 누군가에게는 향수를,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레트로를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백 투 더 6080!
| 서대문 사진관&삼거리 이용원
서대문 사진관
사진관 내부 ⓒ돈의문박물관마을
BTS 자체 콘텐츠 '달려라 방탄'에도 나온 그곳.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에 사진관보다는 누군가의 집무실 같았던 곳, 서대문 사진관입니다. 인테리어가 왜 이렇게 고풍스럽나 했더니 근대 사교장과 1980년대 결혼식장을 콘셉트로 조성되었다고 하네요.
서대문 사진관은 실제 영업을 하는 곳이기도 해서 내부를 자세히 촬영할 수는 없었는데요. 서대문 사진관에서 기록을 남긴 분들의 사진이 벽면 여기저기에 걸려 있습니다. 1980년대로 건너온 만큼 헤어, 의상을 맞추고 온 분들부터 가족, 연인,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이 새겨지며 이곳은 또 다른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의관박물관마을 역사 한 귀퉁이에 나를 채워 넣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바로 옆에 자리한 삼거리 이용원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삼거리 이용원
KBS1TV, 2TV 주말연속극에서 본 것 같은 배경.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풍경들. 푸근한 인상의 이발사가 동네 주민을 반갑게 맞이하고, 미용 가위로 쓱싹쓱싹 숙련된 이발 솜씨를 발휘하고 있으면 가겟방에선 놀러 온 동네 아버지들이 바둑을 두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저절로 재생됩니다. 가겟방에 있는 바둑판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슈퍼마켓, 이용원 등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구나 싶었습니다.
1960~70년대 이발소를 재현한 삼거리 이용원은 디테일을 들여다봐야 하는 공간입니다. 이용 의자, 가운, 이발에 필요한 도구들을 비롯해 영업신고증도 벽면에 달려 있어요. 이용원뿐 아니라 돈의문박물관마을 상설전시관 모두 6080 시대의 감성을 최대한 전하기 위해 엄청 정교하게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시간이지만 마치 그 시대에 한 번은 다녀온 사람처럼 보게 돼요. 참고로 이용원은 유퀴즈온더블록에 나온 적이 있다고 하네요.
|새문안극장
새문안극장
멀티플렉스가 활성 되기 전 영화관을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개봉영화를 알리는 그림입니다. 건물 상부에 커다랗게 걸려있는 그림은 늘 닮게 그렸냐, 아니냐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곤 했었죠. 닮든 닮지 않았든 임팩트가 매우 컸다는 것만은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요?
새문안극장은 60~80년대 영화관을 재해석한 공간입니다. 1층은 예전 영화의 실제 필름을 전시하고 있고 2층에서는 옛날 영화, 만화가 상영되고 있어요. 영화 상영 시간표는 돈의문박물관마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문안극장
연소자 입장가, 서양 전통의 맛!, 암표는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맙시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표현들, 예전에도 어김없이 말썽이었던 암표 거래. 주옥같은 카피와 경고 문구를 현재와 비교하며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박물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지친 다리를 위해 극장 의자에 앉아 상영되는 영화를 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 작품들을 보고 컸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그 시절 엄마, 아빠의 모습이 궁금해지고, 괜히 극장 내부를 한 번 더 둘러보게 되고. 이런 순간이 있기에 가본 적 없는 곳, 겪지 못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나 봅니다.
|돈의문 콤퓨타 게임장&새문안 만화방
돈의문 콤퓨타 게임장
이놈의 자식, 아직도 게임하고 있으면 어떡해! 6시까지 들어오라고 그랬지!
등에 꽂히는 맵고 거센 엄마의 손 회초리가 연상되는 돈의문 콤퓨타 게임장과 새문안 만화방은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 유행했던 게임과 만화를 구경하고 직접 플레이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게임장 한쪽 벽면에 오락실로 자녀를 찾으러 온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요.
1층은 게임방, 2층은 만화방이에요. 천국이 따로 없죠. 콘솔 게임으로도 즐겼던 스노우맨이나 버블버블을 오랜만에 만났어요. 역시나 인기가 좋아 게임기 앞이 빌 틈이 없었습니다.
아날로그 게임의 맛은 역시나 버튼을 연사하느라 나는 타닥타닥 플라스틱 소리 같아요. 실제로 콤퓨타 게임장 안은 게임에 집중한 사람들의 버튼 연사 소리가 가득했어요. 스트리트 파이터, 테트리스 등 대부분의 게임들을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공간이 주는 맛은 비할 데가 없습니다.
새문안 만화방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만화방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많은 종류의 만화책이 꽂혀져 있어요. 드래곤볼, 공포의 외인구단, 보물섬, 다정다감 등등 만화책들은 색이 바래고 모서리가 찢겨 있는 등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었어요.
만화방을 둘러보다가 알게 된 점은 이 시대에도 커피나 차를 만화방에서 마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만화방의 간소화 버전 혹은 초기 모델이겠죠? 벽면이나 선반 위에 있는 종이딱지는 잠재된 수집 욕구를 깨워요. 딱지나 따조, 캐릭터 카드를 모으기 위해 문방구 앞을 어슬렁거렸던 기억까지 자동 소환되며 자연스럽게 저의 유년 시절도 떠올리게 되는 마법 같은 공간입니다.
|생활사 전시관&서대문 여관
생활사 전시관
60~80년대 집을 재현한 생활사 전시관에 들어가면 부뚜막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깁니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는 속담이 있죠. 그 부뚜막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어요. 부뚜막 옆으로는 연탄이 쌓여있고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쥐 모형도 있어요. 출입구 오른 편에는 생활하는 방이 있는데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봤던 익숙한 자개장이나 괘종시계도 반가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노란 장판이었습니다. 요즘엔 노란 장판이 밈처럼 사용되어 낯선 단어는 아니지만 노란 장판이 정말 이렇게 진한 노란빛을 띠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생활사 전시관에는 르세라핌이 콘텐츠 촬영을 위해 방문했었다고 해요.
서대문 여관 / 기획전 《기억 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
서대문 여관에서는 《기억 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12명의 시민이 공유한 기억의 일부를 볼 수 있어요. 일반 시민분들의 사진이 많아 내부를 찍기보다는 나 혹은 당신이 겪었을 수도 있었을 일상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전시는 여관 1층~2층으로 이어져 있고, 각 방마다 시민 작가들의 사진, 영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옛날 필름의 질감, 분위기, 빛 바램이 그대로 느껴지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한강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16:9가 아닌 거의 정방형 크기, 유튜브가 아닌 VHS가 어울리는 영상 역시 옛 화질 그대로라 이렇게 보존을 잘 해 두셨다니! 감탄하게 됩니다. '90년도로 돌아가면 젊은 소녀 엄마랑 놀러 다녀야지'라는 소감처럼 정말 시간여행자가 된다면 소녀, 소년이었을 혹은 청년이었을 부모님과 놀러 다니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요?
|돈의문 구락부
돈의문 구락부 1층
돈의문 구락부 2층
낯선 단어 '구락부'. 클럽의 일본식 음역(音譯)입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개화파 인사 등이 파티나 사교 모임, 스포츠 등을 하기 위해 만났던 공간입니다. 앞서 봤던 공간들이 소시민과 맞닿아 있고 조금 더 친근했다면 구락부는 예스러움 속에 화려함이 깃든 곳이었습니다. 구락부 1층은 크게 클럽, 신여성의 방, W.W 테일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클럽은 화려한 스테이지와 의상, 전축으로 멋을 냈고 신여성의 방은 지금 입고 신어도 세련될 의상과 티타임 공간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해요.
W.W 테일러는 처음에 테일러 숍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쉐보레, 포드 등 자동차를 판매해 최초로 한국 자동차 보급에 기여한 인물 윌리엄 W. 테일러가 세운 'W.W 테일러 상회'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선 테일러 상회에서 낸 자동차 지면 광고들, 당시 건물 모습과 브릭으로 만든 W.W 테일러 상회의 쉐보레 자동차(민경인, 김동혁 작가 제작)를 볼 수 있어요.
2층은 홀 바로 꾸며져 있는데요. 그 시대 펍을 재현한 것처럼 보였어요. 심플하게 꾸며져 있어 가볍게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어린아이들에게는 근대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 어른들에게는 추억이 방울 방울지는 곳이어서 가족 단위로 방문하면 특히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돈의문 역사관, 삼대 가옥, 스코필드기념관 등 구경할 곳이 많고 상설전시, 서대문 여관에서 진행 중인 《기억 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을 비롯해 미디어 파사드 《환영 대 환영 Host and Ghost》, 연중 상설 미디어 아트쇼 《시화일률》도 진행 중이니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시간 여행 혹은 추억을 되짚어 보는 결정적 순간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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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문박물관마을 상설전시》
· 관람안내: 화~일요일 10:00~19: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기억전당포 : 1990 서울 나들이 展》
· 관람안내: 2023.05.27.(토)~12.31.(일) 10:00~19:00 (월요일 휴관)
· 입장료: 무료
세기몰 S매거진
기사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