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클럽 1기]카페의 시간 : 서울의 하루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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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클럽 1기]


카페의 시간 : 서울의 하루



조우리


카페는 ‘풀잎들’이 자라는 화단이다.

홍상수의 짧은 장편 영화 <풀잎들>에 등장하는 골목 카페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기의 방법으로 서울의 카페를 채운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김민희는 아침부터 밤까지 그 카페를 지키며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나도 서울의 한 대로변 카페를 찾아가 온종일 관찰자가 되어봤다. 여러 ‘풀잎들’이 자리를 채웠다가 사라지는 사이 서울의 카페는 시시각각 다른 역할을 한다.


[아침] 카페는 주유소다

출근 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들어온다. 또 다른 무리가 들어오고 몇 분 사이 카페가 가득 들어찬다. “이번 달 우리 회의비 남았지?”, “오, 팀장님 잘 마시겠습니다.” 소리가 들려오더니 커피를 들고 나서면서 문 밖에서 또 한마디 들려온다. “아이 그게 내 돈인가 회장님 돈이지.” 그리고 밀려있는 주문 속 속절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모바일 주문을 찾으러 온 ‘제니퍼’씨 입장,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바로 사라진다. 

아침의 서울 카페는 하루를 버티기 위한 커피 주유소다. 같은 양의 기름보다 2배는 비싸지만, 몸의 시동을 걸기 위해 너도나도 카페인을 충전한다. 나도 힘내서 일하기 위해 카푸치노를 한 잔 주문한다. 강렬한 카페인을 우유 거품이 부드럽게 감싸 천천히 잠이 깬다. 아침밥으로 생크림 롤도 곁들였다.


 


[아침과 점심 사이] 카페는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다.

이 카페는 사무실과 주택 모두 인접해있다. 아침 커피 주유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모습이다.

창 밖으로는 어머니, 혹은 유모들이 유모차를 이끌고 지나간다. 카페 안에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등원 시킨 같은 반 어머니들이 아이들 모이듯 옹기종기 앉았다. 나누는 대화는 좀 다를 것이다. “영유(영어유치원)로는 모자라고, 이제는 코딩이 필수다.” 같은 교육 이야기, “주담대(주택담보대출)금리가 올라 걱정인데 우리는 양가가 도와주셔서 다행이다.”같은 자랑까지,  어른들의 이야기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끊이지 않는다.



[점심] 카페는 밥집일 수도 있다.

카페는 바쁜 서울 사람들이 간단하지만 ‘허접하지 않게' 식사할 수 있는 밥집일 수도 있다.

어느덧 이 곳에 자리 잡은지 3시간 째, 양식 있는 카페 이용자가 되고자 점심도 카페에서 먹는다.

얄팍한 샌드위치 정도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삶은 계란과 옥수수가 같이 들어있는 세트도 보이고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제법 두꺼워보이는 클럽 샌드위치와 신메뉴라는 보랏빛 쉐이크를 함께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서, ‘점심시간인데 아직 사람들이 몰리지 않네’하며 돌아보니 이미 카페에 사람이 한 가득이다. 나처럼 간단히 식사하러 온 사람들, 빠르게 점심을 먹고 와선 남은 점심시간을 즐기러 온 한 무리 직장인들. 그들이 먹고 왔을 양푼김치찌개처럼 카페도 보글보글 사람들로 끓어오른다.



[점심과 저녁 사이] 카페는 휴게소일걸?

점심시간의 폭풍이 물러가고 잠시 고요하다. 

콘센트 자리 간격 만큼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채웠다.

고요한 공기 사이로 여러 대화가 귓가를 파고든다.  “은퇴 후 연금 수령 전까지 시기를 대비하고 있는가?”, “유치원 가기 전에 놀이 학습도 해야”, “대학 졸업 후 무엇을 배워야 취업에 유리한가” 같은 ‘인생의 사이와 사이에 걸친 시기’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저런 인생의 ‘정석 테크트리’를 타는 듯 타지 않는 듯 하는 나는 맞게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까지 들 찰나 커피 잔 속 얼음이 달그락 녹아 떨어진다. 마지막 음료를 고르러 주문대로 향한다. 오후의  카페는 어쩌면 삶의 사이와 사이 위치한 휴게소가 아닐까?



[저녁] 카페는 ‘풀잎들’이 자라는 화단이다.

오후까지 카페가 시간대별로 다른 서울의 모습을 보였다면, 해가 진 이후에는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단편들을 선보인다.

누군가는 퇴근길에 토라진 애인을 달래기 위해 달콤한 케익을 심혈을 들여 고른다. 삼삼오오 모인 한 무리 직장인들은 저녁 번개 이후 남은 뒷담화를 나누는데 빠져있다. 신상이라며 꼭 시켜야 한다던 케익 빙수는 이야기의 홍수 속에 녹아 가라앉고 있다. 

이렇게 저녁까지 나는 <풀잎들> 속 김민희를 따라 하루 종일 카페를 지키며, 일하는 틈틈이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우리들이 피워낸 삶의 ‘풀잎들’이 결국 꽃을 피워내지 않을까, 기대하며.





필자소개

스토리클럽 1기 조우리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금세 경기도로 이사를 가 어릴 적 서울살이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소위 위성도시에 30년 가까이 살며 서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서울에서 대학과 직장을 도합 10년 이상 오갔다. 거주지로서의 서울과 삶터로서의 서울을 여러 시각으로 봤다고 자부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안팎을 오가며 서울계를 도는 ‘인간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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