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란 서울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란 서울은 우리가 보통 서울하면 떠올리는 광화문이 있는 종로, 한강변의 용산이나 강남, 여의도와는
매우 다른 곳입니다.
저는 서울의 대표적인 베드타운 태릉에서 쭉 자랐습니다.
전통적인 서울은 아니고, 서울이 된지 50년도 안된 곳이기 때문에 서울의 중심부와 매우 떨어져 있고, 경기도와 붙어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곳을 저는 ‘서울 아닌 서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서울인데 우리가 떠올리는 서울에서의 삶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저의 서울스토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자란 곳은 1980년대 허허벌판이었던 마들평야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의 주도하에 아파트촌으로 만든 곳입니다.
이 곳의 아파트들은 서울의 과학적인 계산에 따라 4명에서 5명이 살기 적합한 평수로, 아주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곳으로 개발된 곳입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저는 마들평야 근처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에서 , 저는 서울의 다른 아이들 처럼 아파트 안에서 놀고 생활하는 ‘아파트 키드’로 자라게 됩니다.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서도 다니며 보편적인 서울에 사는 아파트 어린이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도 아파트 근처에 있는 학교였고, 주소지도 서울이고, 사용하는 말도 서울사람들이 쓰는 말이고, 이렇게 저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빽빽한 아파트 안에서 옆으로 살짝 돌아보면
제 옆에는 늘 산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름마다 한강에 있는 야외 수영장보다는 가까운 불암산 계곡에 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가면 수목이 가득한 태릉과 강릉이 있어서 이 곳으로 사생대회를 가곤 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아빠차를 타고 좀만 나가면 하얗게 핀 배꽃이 무성했던 기억도 납니다.
좋은일이 있을 때나, 할머니가 놀러오신 날이면 우리 가족은 배꽃 나무 터널 아래에서 태릉 배갈비를 먹곤 했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에 산 친구들은 많지만, 저처럼 자연과 가까이 지낸 친구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가던 땡땡땡 소리와 기차가 지나가면 그 건널목에 서서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순간, 열차가 빠르게 지나갈때 흩날리던 먼지들입니다.
참조 링크 30분 32초 > https://www.youtube.com/watch?v=_llHtZ9uj7I&ab_channel=%EC%B2%A0%EB%8F%84%EC%B1%84%EB%84%90
갑자기 왠 기차와 건널목이라고 생각하실수 있는데, 우리집은 경춘선 열차의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과 멀지 않았습니다.
이 곳은 화랑대역이 아직 운영되고 있을 때 모습, 아마 2010년 제가 중학생때로 생각되는데
서울의 기차역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모습이었습니다.
2010년 12월, 경춘선 무궁화호가 복선 전철화로 인해 운행을 멈추고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도 운행을 멈췄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때부터든 더 이상 무궁화호가 지나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흔적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화랑대역과 무궁화호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갈 때 쯤, 신기하게도 우연인지 운명인지 저는 그 때 일하던 박물관에서 ‘경춘선 무궁화호’열차에 대한 전시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어렴풋한 기억들이 점점 선명해짐을 느꼈습니다.
1980년대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엠티를 갔던, 지금은 중년이 된 분을 인터뷰 해서 전시 소개글에 실었습니다.
3월 아니면 4월, 엠티에 가서 먹을 것들을 잔뜩 이고지고 대성리나 강촌으로 엠티를 떠나는 이야기가 제가 새내기때 갔던 엠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를 듣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경춘선이 서울의 마지막으로 지나가던 화랑대역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다보면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유하는 기억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지를 흩날리며 좁은 건널목을 지나가는 디젤 열차를 서울에서 아주 가까이 보기엔 어렵기 때문에 제 기억에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이곳은 이제 기찻길 대신 경춘선 숲길로 재탄생 해서 서울의 또다른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또 다른 서울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밤에 집근처 중랑천을 따라 산책할 때마다 경춘선이 지나다니던 경춘철교와, 그 뒤에 빽빽하게 가득찬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면서 내가 자란 ‘서울 아닌 서울’이 나에게 가져다준 색다른 경험들을 생각해 보고는 합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고궁, 한강 공원, 북촌 이런 멋진 곳은 아니지만 뒤늦게 서울이 되어 아직은 소위 말하는 ‘시골’의 모습을 간직한 서울에서 자란 저의 독특한 서울스토리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필자소개 : 스토리클럽 2기 고은영
서울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서울에서 지냈기에 공기처럼 느껴지는 서울.
생존을 위한 서울 개발보다는 향유를 위한 서울 개발이 시작된 이후에 태어난 사람.
그래서 서울에서의 과거는 나에게 추억이고, 서울에서의 현재는 나에게 즐거움이고, 서울에서의 미래는 나에게 설렘.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어봤는데, 이렇게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서울에 앞으로도 계속 살게 될지, 너무나 익숙한 서울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자란 서울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란 서울은 우리가 보통 서울하면 떠올리는 광화문이 있는 종로, 한강변의 용산이나 강남, 여의도와는
매우 다른 곳입니다.
저는 서울의 대표적인 베드타운 태릉에서 쭉 자랐습니다.
전통적인 서울은 아니고, 서울이 된지 50년도 안된 곳이기 때문에 서울의 중심부와 매우 떨어져 있고, 경기도와 붙어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곳을 저는 ‘서울 아닌 서울’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서울인데 우리가 떠올리는 서울에서의 삶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독특한 경험을 토대로 저의 서울스토리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자란 곳은 1980년대 허허벌판이었던 마들평야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의 주도하에 아파트촌으로 만든 곳입니다.
이 곳의 아파트들은 서울의 과학적인 계산에 따라 4명에서 5명이 살기 적합한 평수로, 아주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곳으로 개발된 곳입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저는 마들평야 근처 노원구 중계동으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에서 , 저는 서울의 다른 아이들 처럼 아파트 안에서 놀고 생활하는 ‘아파트 키드’로 자라게 됩니다.
아파트 단지와 가까운 피아노 학원에서도 다니며 보편적인 서울에 사는 아파트 어린이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도 아파트 근처에 있는 학교였고, 주소지도 서울이고, 사용하는 말도 서울사람들이 쓰는 말이고, 이렇게 저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빽빽한 아파트 안에서 옆으로 살짝 돌아보면
제 옆에는 늘 산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름마다 한강에 있는 야외 수영장보다는 가까운 불암산 계곡에 가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고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가면 수목이 가득한 태릉과 강릉이 있어서 이 곳으로 사생대회를 가곤 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아빠차를 타고 좀만 나가면 하얗게 핀 배꽃이 무성했던 기억도 납니다.
좋은일이 있을 때나, 할머니가 놀러오신 날이면 우리 가족은 배꽃 나무 터널 아래에서 태릉 배갈비를 먹곤 했습니다.
서울에서 아파트에 산 친구들은 많지만, 저처럼 자연과 가까이 지낸 친구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가 지나가던 땡땡땡 소리와 기차가 지나가면 그 건널목에 서서 열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순간, 열차가 빠르게 지나갈때 흩날리던 먼지들입니다.
참조 링크 30분 32초 > https://www.youtube.com/watch?v=_llHtZ9uj7I&ab_channel=%EC%B2%A0%EB%8F%84%EC%B1%84%EB%84%90
갑자기 왠 기차와 건널목이라고 생각하실수 있는데, 우리집은 경춘선 열차의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과 멀지 않았습니다.
이 곳은 화랑대역이 아직 운영되고 있을 때 모습, 아마 2010년 제가 중학생때로 생각되는데
서울의 기차역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모습이었습니다.
2010년 12월, 경춘선 무궁화호가 복선 전철화로 인해 운행을 멈추고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화랑대역도 운행을 멈췄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때부터든 더 이상 무궁화호가 지나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흔적은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화랑대역과 무궁화호에 대한 기억이 잊혀져 갈 때 쯤, 신기하게도 우연인지 운명인지 저는 그 때 일하던 박물관에서 ‘경춘선 무궁화호’열차에 대한 전시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때 제가 가지고 있던 어렴풋한 기억들이 점점 선명해짐을 느꼈습니다.
1980년대 경춘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엠티를 갔던, 지금은 중년이 된 분을 인터뷰 해서 전시 소개글에 실었습니다.
3월 아니면 4월, 엠티에 가서 먹을 것들을 잔뜩 이고지고 대성리나 강촌으로 엠티를 떠나는 이야기가 제가 새내기때 갔던 엠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를 듣는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경춘선이 서울의 마지막으로 지나가던 화랑대역에 대한 기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살면서,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다보면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유하는 기억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지를 흩날리며 좁은 건널목을 지나가는 디젤 열차를 서울에서 아주 가까이 보기엔 어렵기 때문에 제 기억에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이곳은 이제 기찻길 대신 경춘선 숲길로 재탄생 해서 서울의 또다른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또 다른 서울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밤에 집근처 중랑천을 따라 산책할 때마다 경춘선이 지나다니던 경춘철교와, 그 뒤에 빽빽하게 가득찬 아파트 불빛을 바라보면서 내가 자란 ‘서울 아닌 서울’이 나에게 가져다준 색다른 경험들을 생각해 보고는 합니다.
서울을 대표하는 고궁, 한강 공원, 북촌 이런 멋진 곳은 아니지만 뒤늦게 서울이 되어 아직은 소위 말하는 ‘시골’의 모습을 간직한 서울에서 자란 저의 독특한 서울스토리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서울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을 서울에서 지냈기에 공기처럼 느껴지는 서울.
생존을 위한 서울 개발보다는 향유를 위한 서울 개발이 시작된 이후에 태어난 사람.
그래서 서울에서의 과거는 나에게 추억이고, 서울에서의 현재는 나에게 즐거움이고, 서울에서의 미래는 나에게 설렘.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를 들어봤는데, 이렇게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서울에 앞으로도 계속 살게 될지, 너무나 익숙한 서울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도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