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클럽 2기]20년 전에도 ‘핫’했던 소격동(昭格洞) 이야기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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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도 ‘핫’했던 소격동(昭格洞) 이야기


이상훈



 ‘소격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소격동>이라는 곡을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겠다. 아이유가 부르고 서태지가 작사, 작곡했다.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 소리 예쁜 이 마을에 살 거예요.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

 -소격동(아이유)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은 흔히들 알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아트 선재 센터 등이 있는 경복궁 옆 작은 동네다. 그 명칭은 몰라도 웬만하면 한 번쯤 방문해 봤을 소격동에서 나는 2002년 “대~한민국”을 외쳐 부르던 거리 응원을 들으며 군 생활을 한 대한민국 40대 직장인이다. 암울했던 팬데믹을 통과해 엔데믹에 차츰 적응하면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인 지금 소격동이 다시 떠오르는 이유는 지금 아파트 어디선가 터져 나오는 응원 소리 때문이기도 하고, 희미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소격동을 맘먹고 다시 방문한 것은 새로운 대통령이 임명된 지 한 달쯤 지난 6월의 어느 여름날 주말 아침이었다. 항상 TV에서만 바라보며 언젠가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길었던 것에 비하며 실행은 순식간이었다. 주중의 피곤함이 싹 가시지 않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가볍게 나갈 준비를 했다. 오랜만의 나들이는 가족들과 함께였다. 안국역에 내려 삼청동 안쪽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보이는 건물들이 모두 익숙했다.



사이렌이 울리면 생각나는 #청와대 

청와대를 가장 가 보고 싶어 한 사람은 아내였다. 연일 청와대 앞에 이어진 긴 대기 줄이 뉴스에 나올 때였지만 아내의 ‘투지’로 장인, 장모, 아내와 나까지 주말 아침에 청와대 입장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으나 청와대 앞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청와대 본관(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20년 전 군대에서 위병 근무할 때 긴장을 고조시켰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 호위차와 무리를 이룬 ‘그분’의 차가 지나가면, 사복을 입은 전투경찰이 부대 정문과 후문을 검문하듯이 2인 1조로 근무를 섰었다. 특별한 일 없이 일반인이 청와대에 들어오는 경우는 당연히 없던 시절이다. 춘추관을 마지막으로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삼청동 쪽으로 내려왔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3040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삼청동 골목이 펼쳐지며, 직진해서 동십자각 쪽으로 내려가면 오른편엔 국립민속박물관이 위치한다.



새벽마다 ‘충성’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입~ 충성!! 입~ 충성!!” 

동튼 지 얼마 안 되는 이른 아침마다 시끄러운 충성 소리가 군 막사의 정적을 깨우곤 했다. 갑자기 왜 군대 이야기하느냐고?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용되는 건물이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군부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에는 규장각과 소격서 등이 있던 곳이고, 본관 건물은 경성 의학전문학교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 시절인 1970년대부터 이 자리에 “국군 보안 사령부”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켰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조차 외교관 건물로 오해할 만큼 보안이 철저했던 국립현대미술관 안내 표시판 뒤로 보이는 빨간 벽돌의 건물이 바로 ”국군 기무사령부”의 본관이었던 곳이다.

 그 전신인 ‘보안사(국가 보안 사령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대통령이 사령관으로 재직했던 곳이다. 1991년에 이르러 국군 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는 과천으로 이전했다. 한동안 보안사 시절 극심했던 고문의 장소와 흔적들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철거됐다. 20년 전 이곳은 “국군 기무 사령부”로 내가 근무했던 부대이다. 국군의 “보안”을 담당했던 부대… 군대 장성 및 장교들의 출입을 관리했던 위병소 근무, 새벽을 흔들던 ‘충성’ 외침,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았던 태극기 게양식은 한동안 내 청춘의 일상이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의 일상은 매우 다르다. 핸드폰 하나면 가능한 예매와 큐알 코드만 쓱 대면 끝나는 입장 절차. 검열과 통제 없이 세상의 틀을 깨고 자유로운 예술 감성을 전달하는 작가들이 있고, 그것을 한껏 만끽하는 청춘들이 머리 보다 높게 핸드폰을 높이 들어 올릴 뿐이다.



군인을 난처하게 했던 #황생가 칼국숫집칼국수집(前 북촌 칼국수)

 20년 전 복무했던 곳에 대한 다양한 감회와 반가움은 곧 허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2001년부터 현재까지 삼청동 맛집으로 소문난 “황생가 칼국수”집을 찾았다. 사골칼국수와 만두가 유명한 곳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2’에도 등재되어서 그런지, 11시 오픈 시간이 되기도 전에 20~30명의 손님이 이미 줄을 서고 있었다.

 지금처럼 이 거리로 들어오는 차가 많지. 않았던 2000년대 초반 ‘북촌 칼국수’로 오픈한 이 집은 개업 후 빠르게 맛집으로 떠올랐다. 점심시간이면 갑자기 몰려드는 손님에 늘 주차 공간이 부족하곤 했다. 특히 주말이면 이리저리 주차 공간을 찾던 외제차들이 군부대 입구로 불쑥 머리를 들이미는 일이 허다했다. 들어오는 외제 차를 세우고 “충성!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면 “여기가 북촌 칼국수인가요?”하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어이없기도 하고, 성가신 일이었지만,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 맛집이다. 다행인 것은 그 맛이 변하지 않아서 지금도 계속 찾게 된다는 것이다.




 40년 가까이 서울에 살고 있으면서도 소격동을 자주 가지 못했다. 부지런히 데이트 장소를 찾던 시기도 지났고, 미술관, 박물관에 큰 취미를 두지도 못했기에 동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나의 핫 플레이스는 추억 속에 식어가고, 서울은 다른 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은 소격동, 인사동, 삼청동과 그 주변은 내가 기억하던 그 시절과 다른 방법으로 나를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서 느낀 뜨거운 감정은 추억이기도 했지만, 반가움과 즐거움이기도 했다.

 중년이 되면서 서울은 내게 늘 ‘벗어나야 할 도시’였는데, 요즘은 다시 서울 중심부에 조금은 더 오래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대문 안을 돌아다니다가 부동산이 눈에 띄면 유리에 붙은 공고를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이 도시에는 아직 내가 추억할 것이, 여전히 모르는 것이, 누리지 못한 것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 스토리클럽 2기 이상훈

어릴 적 할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던 추억에 젖어 관광을 공부하고 관광을 업으로 삼아 15년째 세계를 여행하던 40대 평범한 이 땅의 소시민.

코로나로 세계를 무대로 하던 사람이 국내를 벗 삼아 지낸 지 3년 차 종로, 광화문을 사랑하고 군복무까지 서울에서 하였으나 서울의 소중함을 인제야 느끼고 짝사랑을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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