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클럽 2기]길치 아내, 남편 따라 서울 걷기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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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 아내 남편 따라 서울 걷기


조혜숙


스토리클럽2기를 시작하다

 “이번에 스토리클럽 2기라고 모집한다는데 한번 해보면 어때?” 일전에 여행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남편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글쎄 할 일도 많고 그게 나랑 상관이 있어?” 사실 그때 당시 메타버스에서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면서 90일 작가프로그램을 하던 나는 함께 하는 인플루언서들과 책 쓰기를 도전하고 있었기에, 이번 프로젝트가 뭔지는 몰라도 작가님이 운영하신다는 이야기에 귀가 살짝 솔깃하기도 했다. 아마 글을 쓰는 일에 약간의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으리라.

 유아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던 나는 첫날 2시간 동안 뜻하지 않던 기대로 설렜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알게 됨과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들과 함께했던 프로젝트 활동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이 고향이다’라는 특별한 생각을 하고 살아보지 못했던 나에게 갑자기 나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기라도 하듯 마음 한구석이 일렁였다.

 스토리클럽2기를 시작한 첫날이 남편과 만 보 걷기를 시작하기로 약속했던 첫날이어서 그랬을까? 그냥 평범했던 나의 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바뀌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첫날 과제로 내어주신 소개 글을 작성하면서 서울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돈의문 박물관과 함께 한 시간여행

 돈의문박물관이라는 곳은 나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있다. 알고 보니 남편과 연애 시절 자주 다니던 근사한 레스토랑이 있던 곳이기도 했고, 나의 결혼 야외촬영을 하고 돌아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장소이기도 하면서 나의 가장 젊은 날의 일부를 추억할 수 있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물론 이 박물관의 이름을 듣기까지 나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이곳에 오는 날들이 새로운 추억으로 그리고 특별한 날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을 만날 수 있는 도슨트 투어와 ‘시계와 생활 展’에서 마음을 담고 추억을 소환했다. 20대부터 50대까지 함께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 남편과 함께여서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 마구 쏟아졌다. 언젠가 누구에게 꼭 선물해주고 싶은 전시회였는데 아쉽게도 나누지 못하고 끝나긴 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다시 한번 하고픈 시간여행이다.

 

길치 아내 남편 따라 서울 걷기

 내가 스토리클럽2기를 시작하고 딱 2주 차 나의 소개 글을 함께 공유하던 둘째 날은 나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갖게 된 나름의 동기들이 스토리클럽 2기에 마음을 담고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생의 첫 어려운 관문을 지나가고 있는 입시를 준비하는 큰딸의 추억들을 담아볼까 고민도 했었지만, 자기소개 글을 함께 나누면서 그 관심사는 작가님의 조언에 따라 바로 내 안의 나에게로 돌아왔다. 내 글의 소재를 나에게서 찾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단 한 번도 오롯이 나에게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내 안의 모습들이 신기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했던 순간이다.

 

나랑 같이 걸을래?

 50일 만 보 걷기의 시작은 스토리클럽 프로젝트와 함께 자연스레 시작되었고, 스토리클럽의 마지막 날 딱 50일을 채우고 끝났다. 큰아이의 입시 등의 일로 그동안 하루 혹은 이틀 만 보를 채우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삼시세끼 걷자고 결심했던 남편과의 약속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첫 주 토요일 돈의문박물관과 함께 한 시간여행에서도 나는 남편과 동행했었고, 돌아오는 길을 시작으로 남편이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 익숙한 그 길을 궁금해하기도 했다.

스토리클럽 마지막 영상으로 만 보 인증의 기록을 나눌 때는 왠지 모를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마음 한쪽이 꽉 차는 기분이 들었다. 눈으로 보아 그런지 내가 걸은 흔적들이 되살아나는 그 기분은 잊을 수가 없다.

 


서울살이를 추억하다.

 비가 무섭게 오던 어느 토요일 남편의 어릴 적 첫 서울살이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공간을 함께 다녀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공간에서 헤매고 다니다 보니 갑자기 나와 남편에게 멈추어진 시선이 느껴졌다. 전원일기를 방불케 하는 마루에 모여계신 여러 어르신의 모습, 허물어져 가는 세탁소와 구멍가게. 아마 집을 사기 위해 나온 사람인 줄 아셨던지 확인차 물으신다. “어릴 적 이곳에서 살았어요. 궁금해서 왔어요.” 갑자기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나이를 물으시고 자제분들의 나이와 같다시며 학교 등 여러 가지 정보들을 물으셨다.

어르신들과 짧은 대화로 그 공간은 갑자기 함께하는 이의 추억팔이 공간이 되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엔 나름의 많은 생각이 나서 남편과 꽤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미 사라져버린 나의 어린 시절 서울... 갑자기 그곳이 가고 싶어졌다. 남편의 서울살이 공간에서 만난 이들의 그 공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왜 그분들은 그 공간을 지키고 있을까? 나에게 서울이란 공간은 무슨 의미일까? 서울은 나에겐 그냥 익숙한 공간이었다. 딱히 서울이라고 서울 사람이라고 별스럽지 못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남편의 서울살이를 추억하며 그 별스럽지 않은 나의 어릴 적 서울살이가 그리워지면서 회귀본능이 살아났다. 앞으로 나의 서울살이 추억도 소환하리라.

 



집으로 가는 길-걸을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차로 다닐 때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생각지도 못한 내 생각들이 마구 일어나는 곳 스토리클럽이 그랬다. 갈 때마다 주머니 가득 보석을 줍고 오는 재미란 함께 한 분들만 느낄 수 있었던 행운 같은 것이었다. 무수히 많은 보석 중 가장 큰 발견은 단연 걷는 거다. 스토리클럽 2기를 하는 매주 수요일 의도적으로 낮에 걸을 분량을 남겨놓은 채 열심히 일에 올인했다.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걸어서 오는 길은 너무나 행복했다. 그 길가에는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이 추억으로 살아났고, 특별히 그 길은 나의 젊은 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나에게 있어서 공간이란?

 공간이란? 현재의 공간과 과거의 공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범위로 정의된다. 나에게 있어서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냥 나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고향과 같은 공간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클럽을 마무리하며 서울이라는 공간이 특별해졌다. 아마도 나의 추억이 있는 곳이기에 누군가와 함께했던 곳이기에 그랬을까? 걸으며 만난 나의 서울은 더욱 특별했다. 매일 만 보를 걸으며 내가 다니던 길 그 공간이 특별해져 버렸다. 그 특별한 공간에서 내 생각도 특별해졌다. 함께 나누면 나눌수록 특별해지고, 내 발길이 닿고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특별해졌다. 누군가의 서울도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자신을 특별하게 발견하고 추억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만나는 의미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다.

 


필자 소개 : 스토리클럽 2기 조혜숙

서울 중구에서 태어나 30년 동안 중구민으로 살다가, 결혼 후 낯선 은평구를 제2의 고향으로 만들어 살고 있는 워킹 맘.

인생의 모토가 가족인 뼛속까지 사랑 넘치는 서울 엄마.

3년간 코로나로 SNS 세계에 입문해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즐기며 N잡러와 작가 도전 중.

공간지능 제로의 길치 매력을 장착하고, 자가용 없이 새로운 서울 길을 걷고 싶은 만 보러 서울 토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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