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라서 걸었어, 밤이 되면 나타나거든. 이 도시는.
김윤아
밤 열두시. 자정이 되면 오래된 푸조를 타고 황금시대로 들어서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광화문의 어떤 골목도 밤이 되면 나타난다. 물론 영화처럼 다른 시대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궁에 달이 떠오르고, 지나치는 행인이 변하고,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지면. 영화 속 장면처럼, 평범하던 산책의 줄거리가 변해간다. 그래서 오늘 밤 꾸게 될 꿈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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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밤, 광화문 |
잠들지 못하는 밤. 어쩌면 잠들기 아쉬운 밤. 가볍게 걷기위해 길을 나섰다. 밤을 밝히지 않고 잠을 깨우지 않을 가깝고도 편안한 장소로. 밤마실의 목적은 어디로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잠들기 위해서니까. 생각은 가볍게 덜어내고, 마음은 따뜻이 채워가며, 가끔은 멈춰서 쉴 수 있는 곳으로. 가볍게 떠나는 산책, '슬립온 slip-sleep on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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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걸어볼까, 저녁과 밤 사이에 나타나는 곳으로. | 영추문/ 어쩌면 마주치게 될지도 몰라, 상상했던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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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외로운 시간을 정적 속에서 보내본 사람만이 따뜻한 시선과 사랑으로 사물을 가늠하고 영혼의 바탕을 보고 인간적인 모든 약점을 관대하게 이해할 수 있다」
- 헤르만헤세, 밤의 사색
S# 1 담장길 (경복궁 영추문 돌담길)
달빛이 걸쳐진 밤. 달빛이 스며든 담벼락을 따라 걸으면 밤의 낭만이 감돈다. 오늘따라 달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날이라고 해도 괜찮다. 곧 밤의 조명 가로등이 켜지기 때문이다. 궁궐의 가로등은 달빛처럼 그윽하고 신비롭다. 청사초롱을 닮았거나 오래된 글씨가 새겨진 등불 아래, 밤은 아늑하고 점차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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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추문 담벼락에 걸린 달 | 이런 조명 아래서라면 더 느긋히 걷게될까 |
재작년 경복궁은 밤을 위한 조명을 새롭게 걸었다. 불을 밝히면 안쪽에 새겨진 꽃과 나비, 나무가 나타나는 사각 유리등은 효명세자 시절 탄생했다. 처음으로 밤의 연회를 위해 내걸었던 등불은 이제 달빛기행과 야간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볼 수 있는 연회의 상징이 되었다. 깊은 밤, 홀로 떠나는 산책도 이처럼 달콤해질까?
고궁의 밤이 고요하기만 할 거라는건 오해다. 걷다 보면 밤의 적막을 깨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 오는데, 이곳이 떠오르는 러닝의 명소이기 때문이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감싸안는 고궁 맞은 편으로 도시의 야경이 빛나는 거리는, 막히는 곳 없이 탁 트인 평지로 달리기에 더 할 나위 없다. 낮에는 관람객에게 내주었던 거리를, 밤이 되면 한 무리 러너들이 가쁜 숨소리로 채운다. 은은한 조명 아래, 밤의 활기가 고궁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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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소리가 채우는 거리 |
S# 2 운동장(경희궁 공원)
저녁 무렵. 학교 운동장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가 있을까. 넓고 평평한 바닥은 밤에 걷기에도 무리가 없거니와, 별 거 없는 그래서 오로지 걷거나 쉬기에 좋은 텅 빈 공간은 산책하기 제 격이다. 광화문 근처에도 운동장이 있다. 아주 오래된, 깊은 사연을 품고서.
경희궁은 광해군 시절 100여개의 거대한 전각으로 건립되었으나, 역사속에서 훼손되거나 이전되면서 이제는 몇 개의 전각과 공원 부지로 남겨졌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때 설립된 경성중학교의 운동장이 남아있어서 고궁과 공원 그리고 숲길과 운동장까지 거닐 수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무엇이 보여서가 아니라, 무엇도 볼 수 없어서 그 시절과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곳은 그저 걷기에, 더 없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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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비어있고 대부분은 떠들썩한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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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공원, 운동장 어디에 머물게 될까 |
S# 3 마당 (한글글자마당)
잠이 오지 않는 밤엔 책을 펼쳐든다.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글씨에 이야기 때로는 잠에 빠져들까. 광화문 광장 바로 옆에는 수만 개의 글씨가 적혀있는 마당이 있다. 자음과 모음으로 조합이 가능한 1만 1172글자가 새겨진 '한글글자마당'이다. 재외동포, 다문화가정, 국내 거주 외국인을 포함한 1만 여명의 국민들이 직접 쓴 손글씨가 새겨진 마당은 정겹고 따뜻하다.
광장 바로 옆에 있지만 세종문회회관에 가려진 덕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은 한 가운데 작은 카페도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자정까지, 평일에는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카페에서 사색에 잠기기 충분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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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쏟아져내린 마당 | 어떤 생각에 잠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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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 파스칼 메르세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S# 4 정자 (적선정)
도심 속 정자로 스며드는 달빛과 바람. 한밤의 낭만에 잠길 수 있는 곳은 세종문화회관 뒷 편 도렴공원에 있다. '적선정'은 지난해 지어졌는데, 공공부지 내 전통정자 축조사업의 일환으로 한옥 부자재를 재활용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경복궁 향원정과 창덕궁 부용정을 본 떠 만든 지붕은 고풍스럽고, 한 칸 규모는 소박하고 아늑하다. 고스란히 쏟아지는 달빛은 온기가 된다. 밤도 쉬어가는 안식처에서 더없이 나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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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 그 안의 정자 | 달빛과 바람이 감도는 시간 |
S# 5 벤치 (평화와 화해의 나무)
가로등 불빛 아래, 책을 꺼내 읽고 싶어지는 독서대가 놓인 벤치가 있다. 어느 밤이면 생각나지 않을까? 이 거리를 나만의 방으로 만드는 벤치는 세종문화회관 뒷마당에 놓여있다. 야트막한 나무로 둘러싸여 쉽게 보이지 않는 덕분에 마치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온 것 같은 장소에는, 꼭 여기와 잘 어울리는 한 그루 나무가 있다. 평화와 화해를 각 국의 문자로 정성스레 새긴 '평화와 화해의 나무'를 감상하다 보면, 거리는 평온하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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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는 조명 아래, 쉬기 좋은 벤치와 평화와 화해의 나무 |
S# 6 다리 (청계천 삼일교)
'믈 위에 길처럼 펼쳐지는 달 그림자'를 가리켜 몽가타(Mongata)라고 부른다. 밤이 되어야 보이는 길과 그를 비추는 강이 있는 곳. 청계천의 밤을 부를 수 있는 말들은 얼마나 많을까. 서울시는 국제도시조명연맹(LUCI)가 수여하는 도시조명상을 세 차례나 받으며 최다수상 도시의 영예를 얻은 바 있는데, 특히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조성한 야간경관으로 세계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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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꺼지면 들리는 소리, 조명이 켜지면 보이는 풍경 |
각양각색의 LED 조명이 설치되어 밤이면 빛나는 물길이 되는 거리는 장소마다 시간마다 의미를 비춰낸다. 독립운동가 33인이 건너간 '삼일교' 아래는 서른 세명을 꽃으로 그려낸 벽화가 있고, 꽃의 중심마다 조명이 올려져있다. 어둠 속에 빛나는 작품을 따라 걸으며, 긴 밤을 밝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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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면 기억과 추억도 생길테니까 |
S# 7 광장 (광화문 광장)
새로 단장한 광장은 단연 밤에 걷기 좋다. 한글, 촛불, 태극기 등 역사적 의미를 새겨낸 바닥 조명이 켜지고, 훈민정음 28글자가 숨겨진 공간에는 저녁에만 나타나는 글자도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건 미디어 파사드다. 도심의 빌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은 이 도시의 일상을 영화처럼 만든다. 세종문화회관 해치마당, KT 사옥, 그리고 광화문 역사를 따라 흐르는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이상의 경계를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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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어둠을 배경으로 흐르는 영상 | 밤 사이, 아늑하고 아득한 공간 |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는 다빈치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빛과 색이 스며든 밤을 걷는다. 오래, 깊이, 천천히 머무를수록 다채로워지는 풍경과 소란해지는 이야기로 이 밤을 꼬박 지새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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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아니라 조명이었어, 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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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서 걸었어, 밤이 되면 나타나거든. 어떤 이야기는. |
필자소개 : 스토리클럽 2기 김윤아
배낭보다 에코백, 맥주보다 라떼, 운동화보다 슬립온이 익숙한 사람.
걷고, 멈추고, 듣고, 머무르며, 도시 전체를 관망하기보다, 도시 일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종로.
경희궁 길을 걷다가 문득 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후 이사를 했다.
서점과 미술관이 많은 동네는, 길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매일 감탄하고 자주 애틋해하며, 여기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
밤이라서 걸었어, 밤이 되면 나타나거든. 이 도시는.
김윤아
밤 열두시. 자정이 되면 오래된 푸조를 타고 황금시대로 들어서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광화문의 어떤 골목도 밤이 되면 나타난다. 물론 영화처럼 다른 시대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궁에 달이 떠오르고, 지나치는 행인이 변하고,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지면. 영화 속 장면처럼, 평범하던 산책의 줄거리가 변해간다. 그래서 오늘 밤 꾸게 될 꿈마저도.
잠들지 못하는 밤. 어쩌면 잠들기 아쉬운 밤. 가볍게 걷기위해 길을 나섰다. 밤을 밝히지 않고 잠을 깨우지 않을 가깝고도 편안한 장소로. 밤마실의 목적은 어디로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잠들기 위해서니까. 생각은 가볍게 덜어내고, 마음은 따뜻이 채워가며, 가끔은 멈춰서 쉴 수 있는 곳으로. 가볍게 떠나는 산책, '슬립온 slip-sleep on 광화문'.
S# 1 담장길 (경복궁 영추문 돌담길)
달빛이 걸쳐진 밤. 달빛이 스며든 담벼락을 따라 걸으면 밤의 낭만이 감돈다. 오늘따라 달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날이라고 해도 괜찮다. 곧 밤의 조명 가로등이 켜지기 때문이다. 궁궐의 가로등은 달빛처럼 그윽하고 신비롭다. 청사초롱을 닮았거나 오래된 글씨가 새겨진 등불 아래, 밤은 아늑하고 점차 아득해진다.
재작년 경복궁은 밤을 위한 조명을 새롭게 걸었다. 불을 밝히면 안쪽에 새겨진 꽃과 나비, 나무가 나타나는 사각 유리등은 효명세자 시절 탄생했다. 처음으로 밤의 연회를 위해 내걸었던 등불은 이제 달빛기행과 야간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볼 수 있는 연회의 상징이 되었다. 깊은 밤, 홀로 떠나는 산책도 이처럼 달콤해질까?
고궁의 밤이 고요하기만 할 거라는건 오해다. 걷다 보면 밤의 적막을 깨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 오는데, 이곳이 떠오르는 러닝의 명소이기 때문이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감싸안는 고궁 맞은 편으로 도시의 야경이 빛나는 거리는, 막히는 곳 없이 탁 트인 평지로 달리기에 더 할 나위 없다. 낮에는 관람객에게 내주었던 거리를, 밤이 되면 한 무리 러너들이 가쁜 숨소리로 채운다. 은은한 조명 아래, 밤의 활기가 고궁을 휘감는다.
S# 2 운동장(경희궁 공원)
저녁 무렵. 학교 운동장만큼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소가 있을까. 넓고 평평한 바닥은 밤에 걷기에도 무리가 없거니와, 별 거 없는 그래서 오로지 걷거나 쉬기에 좋은 텅 빈 공간은 산책하기 제 격이다. 광화문 근처에도 운동장이 있다. 아주 오래된, 깊은 사연을 품고서.
경희궁은 광해군 시절 100여개의 거대한 전각으로 건립되었으나, 역사속에서 훼손되거나 이전되면서 이제는 몇 개의 전각과 공원 부지로 남겨졌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때 설립된 경성중학교의 운동장이 남아있어서 고궁과 공원 그리고 숲길과 운동장까지 거닐 수 있는 독특하고 유일한 장소가 되었다. 무엇이 보여서가 아니라, 무엇도 볼 수 없어서 그 시절과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곳은 그저 걷기에, 더 없이 충분하다.
S# 3 마당 (한글글자마당)
잠이 오지 않는 밤엔 책을 펼쳐든다.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글씨에 이야기 때로는 잠에 빠져들까. 광화문 광장 바로 옆에는 수만 개의 글씨가 적혀있는 마당이 있다. 자음과 모음으로 조합이 가능한 1만 1172글자가 새겨진 '한글글자마당'이다. 재외동포, 다문화가정, 국내 거주 외국인을 포함한 1만 여명의 국민들이 직접 쓴 손글씨가 새겨진 마당은 정겹고 따뜻하다.
광장 바로 옆에 있지만 세종문회회관에 가려진 덕에 상대적으로 조용한 곳은 한 가운데 작은 카페도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자정까지, 평일에는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카페에서 사색에 잠기기 충분한 밤이다.
S# 4 정자 (적선정)
도심 속 정자로 스며드는 달빛과 바람. 한밤의 낭만에 잠길 수 있는 곳은 세종문화회관 뒷 편 도렴공원에 있다. '적선정'은 지난해 지어졌는데, 공공부지 내 전통정자 축조사업의 일환으로 한옥 부자재를 재활용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경복궁 향원정과 창덕궁 부용정을 본 떠 만든 지붕은 고풍스럽고, 한 칸 규모는 소박하고 아늑하다. 고스란히 쏟아지는 달빛은 온기가 된다. 밤도 쉬어가는 안식처에서 더없이 나른해진다.
S# 5 벤치 (평화와 화해의 나무)
가로등 불빛 아래, 책을 꺼내 읽고 싶어지는 독서대가 놓인 벤치가 있다. 어느 밤이면 생각나지 않을까? 이 거리를 나만의 방으로 만드는 벤치는 세종문화회관 뒷마당에 놓여있다. 야트막한 나무로 둘러싸여 쉽게 보이지 않는 덕분에 마치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온 것 같은 장소에는, 꼭 여기와 잘 어울리는 한 그루 나무가 있다. 평화와 화해를 각 국의 문자로 정성스레 새긴 '평화와 화해의 나무'를 감상하다 보면, 거리는 평온하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S# 6 다리 (청계천 삼일교)
'믈 위에 길처럼 펼쳐지는 달 그림자'를 가리켜 몽가타(Mongata)라고 부른다. 밤이 되어야 보이는 길과 그를 비추는 강이 있는 곳. 청계천의 밤을 부를 수 있는 말들은 얼마나 많을까. 서울시는 국제도시조명연맹(LUCI)가 수여하는 도시조명상을 세 차례나 받으며 최다수상 도시의 영예를 얻은 바 있는데, 특히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조성한 야간경관으로 세계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각양각색의 LED 조명이 설치되어 밤이면 빛나는 물길이 되는 거리는 장소마다 시간마다 의미를 비춰낸다. 독립운동가 33인이 건너간 '삼일교' 아래는 서른 세명을 꽃으로 그려낸 벽화가 있고, 꽃의 중심마다 조명이 올려져있다. 어둠 속에 빛나는 작품을 따라 걸으며, 긴 밤을 밝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S# 7 광장 (광화문 광장)
새로 단장한 광장은 단연 밤에 걷기 좋다. 한글, 촛불, 태극기 등 역사적 의미를 새겨낸 바닥 조명이 켜지고, 훈민정음 28글자가 숨겨진 공간에는 저녁에만 나타나는 글자도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건 미디어 파사드다. 도심의 빌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은 이 도시의 일상을 영화처럼 만든다. 세종문화회관 해치마당, KT 사옥, 그리고 광화문 역사를 따라 흐르는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이상의 경계를 교차한다.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는 다빈치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빛과 색이 스며든 밤을 걷는다. 오래, 깊이, 천천히 머무를수록 다채로워지는 풍경과 소란해지는 이야기로 이 밤을 꼬박 지새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배낭보다 에코백, 맥주보다 라떼, 운동화보다 슬립온이 익숙한 사람.
걷고, 멈추고, 듣고, 머무르며, 도시 전체를 관망하기보다, 도시 일부가 되기를 희망한다.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종로.
경희궁 길을 걷다가 문득 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후 이사를 했다.
서점과 미술관이 많은 동네는, 길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매일 감탄하고 자주 애틋해하며, 여기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다.